2,000K보다 더 중요한 숫자, 1,661 — 제이콥 디그롬은 얼마나 압도적이었나
통산 2,000탈삼진을 1,661이닝 만에 찍은 투수. 누적보다 밀도로 봐야 하는 제이콥 디그롬의 커리어
2,000번째 삼진은 경기 시작과 거의 동시에 나왔다. 8월 20일 텍사스 글로브 라이프 필드. 제이콥 디그롬은 워싱턴의 첫 타자 데일런 라일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고, 이어 아비멜렉 오티스에게 던진 1-2 슬라이더를 스트라이크존 아래로 떨어뜨렸다. 오티스의 배트가 따라 나왔고 헛스윙이 됐다. 통산 2,000탈삼진이었다.
관중이 일어섰고 디그롬은 모자를 벗어 답했다. 그리고 다시 공을 던졌다. 이날 그의 최종 성적은 6이닝 1피안타 1볼넷 10탈삼진 무실점. 텍사스는 워싱턴을 2-0으로 꺾었고, 디그롬은 경기 종료 시점 통산 탈삼진을 2,008개까지 늘렸다.
2,000탈삼진 자체만 놓고 보면 디그롬은 MLB 역사상 95번째다. 위대한 기록이지만 전인미답의 영역은 아니다. 그래서 디그롬의 2,000K를 이야기할 때 정말 봐야 할 숫자는 2,000이 아니다. 1,661이다. 디그롬이 2,000번째 삼진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했던 이닝이다.
디그롬은 통산 272번째 경기, 1,661이닝째에 2,000탈삼진을 달성했다. 두 부문 모두 MLB 역사상 두 번째로 빠르다. 경기 수 기준으로 그보다 빨랐던 투수는 랜디 존슨뿐이다. 랜디 존슨은 262경기, 디그롬은 272경기였다. 이닝 기준으로는 크리스 세일만 앞에 있다. 세일은 1,626이닝, 디그롬은 1,661이닝이었다.
즉 디그롬은 2,000탈삼진이라는 누적 기록에 도달하면서 동시에 MLB 역사상 가장 높은 탈삼진 밀도를 가진 선발투수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2,000을 1,661로 나눠 9이닝으로 환산하면 대략 10.8 K/9이다.
커리어 K/9 순위에서도 디그롬은 역사적인 영역에 있다. 최근 기준으로 그의 위에는 블레이크 스넬, 딜런 시즈, 크리스 세일, 프레디 페랄타 같은 이름이 있었고, 뒤에는 랜디 존슨, 맥스 슈어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페드로 마르티네스, 놀란 라이언이 놓여 있었다. 이 순위가 디그롬의 커리어를 꽤 정확하게 설명한다. 그는 오래 던진 투수가 아니다. 대신 던지고 있을 때는 역사상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타자를 돌려세웠다.
통산 2,000탈삼진을 기록한 투수를 떠올려보자. 놀란 라이언은 5,714개, 랜디 존슨은 4,875개, 로저 클레멘스는 4,672개를 기록했다. 맥스 슈어저와 저스틴 벌랜더 역시 3,000개를 훌쩍 넘었다. 이들과 비교하면 디그롬의 2,008개는 압도적인 누적 기록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닝도 마찬가지다. 랜디 존슨은 4,135⅓이닝을 던졌고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2,827⅓이닝을 기록했다. 반면 디그롬은 이제 겨우 1,600이닝대다. 그래서 디그롬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커리어를 평가하면 언제나 손해를 본다. 승수도 그렇다. 3,000이닝도 없고, 사이영상은 두 번이다.
그런데 질문을 바꾸면 완전히 다른 투수가 나온다. 얼마나 오래 던졌는가가 아니라 마운드에 있었던 순간 얼마나 지배적이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디그롬의 답은 역사적인 수준이다.
디그롬의 커리어를 바꾼 시즌은 2018년이다. 32경기, 217이닝, 269탈삼진, 평균자책점 1.70. Baseball-Reference 기준 WAR는 9.9였다. 그런데 승패는 고작 10승9패였다.
예전이라면 사이영상을 받기 어려운 승수다. 하지만 디그롬은 압도적인 투구 내용으로 NL 사이영상을 가져갔다. 그리고 2019년에도 204이닝, 255탈삼진, 평균자책점 2.43을 기록하며 다시 사이영상을 받았다. 2년 동안 421이닝, 524탈삼진, 두 차례 사이영상. 이 시기의 디그롬은 이미 최고의 투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진짜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2021년 디그롬의 기록을 다시 보면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15경기, 92이닝, 평균자책점 1.08, 146탈삼진. FanGraphs 기준 K%는 45.1%, BB%는 3.4%, K-BB%는 41.7%, FIP는 1.24였다.
타석에 들어온 타자의 거의 절반이 삼진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볼넷은 거의 주지 않았다. 보통 강속구 투수는 삼진을 많이 잡는 대신 어느 정도 볼넷 위험을 감수한다.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는 볼넷을 억제하지만 압도적인 탈삼진율을 만들기 어렵다. 디그롬은 둘을 동시에 했다.
삼진은 마무리투수처럼 잡고, 볼넷은 제구형 선발처럼 주지 않았다. 2021년의 41.7% K-BB%는 그래서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투수가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 삼진과 볼넷에서 거의 극단에 가까운 우위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 시즌 정상적으로 180~200이닝을 던졌다면 어떤 숫자가 나왔을까. 우리는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디그롬 커리어 전체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문제는 늘 같은 곳에서 시작됐다. 몸이었다. 2021년 92이닝, 2022년 64⅓이닝, 2023년 30⅓이닝, 2024년 10⅔이닝. 네 시즌을 모두 합쳐도 약 197⅓이닝이다.
그런데 디그롬은 2018년 한 시즌에만 217이닝을 던졌다. 이 숫자 하나면 충분하다. 네 시즌 동안 던진 이닝이 전성기 한 시즌보다 적었다. 2023년에는 결국 두 번째 토미 존 수술까지 받았다. 디그롬의 커리어에서 가장 무서운 상대는 프레디 프리먼도, 후안 소토도 아니었다. 자신의 오른팔이었다.
그래서 디그롬을 평가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건강도 능력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선발투수의 첫 번째 역할은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투수라도 IL에 있으면 팀에 승리를 제공할 수 없다. WAR 역시 결국 경기장에서 만들어낸 가치의 합계다.
그래서 디그롬의 커리어 WAR는 압도적인 역사적 에이스들과 비교하면 낮다. 이번 등판 전 Baseball-Reference 기준 통산 WAR는 49.6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향후 명예의 전당 논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두 차례 사이영상, 다섯 차례 올스타, 통산 2점대 중반의 평균자책점, 2,000탈삼진. 하지만 2,000이닝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투구량. 누적과 전성기의 충돌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디그롬이라는 투수가 재미있어진다. Baseball-Reference의 JAWS는 단순 누적 WAR만 보는 지표가 아니다. 커리어 WAR와 가장 뛰어난 7개 시즌의 WAR를 함께 평가해 장기 누적과 전성기 가치 사이의 균형을 보려는 명예의 전당 평가 방식이다.
현재 JAWS 선발투수 순위에서 디그롬은 누적 WAR 부족 때문에 역대 최상단에 있지 않다. 하지만 전성기 가치까지 함께 고려하면 이야기가 꽤 달라진다. 최근 기준 디그롬의 7년 피크 WAR는 39.7, JAWS는 44.7이었다.
그래서 디그롬을 논할 때 종종 등장하는 이름이 샌디 쿠팩스다. 쿠팩스 역시 부상 때문에 30세에 은퇴했고 비교적 짧은 커리어를 보냈지만, 전성기의 압도적인 지배력으로 야구 역사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물론 쿠팩스와 디그롬의 커리어가 같은 것은 아니다. 쿠팩스는 2,324이닝을 던졌고 165승을 거뒀으며 월드시리즈에서도 전설적인 장면들을 남겼다. 하지만 짧더라도 최고의 순간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둘이 같은 토론 테이블에 놓인다.
디그롬에게 부족했던 것은 거의 항상 누적 기록이었다. 그래서 2,000이라는 숫자는 중요하다. 2,000탈삼진은 단순히 아주 잘 던졌다는 기록이 아니다. 충분히 오래 던져야만 얻을 수 있는 숫자다. 디그롬에게는 그게 어려웠다.
2014년 26세 가까운 나이에 늦게 메이저리그에 올라왔고, 전성기 중간에 반복해서 부상당했다. 30대 중반에는 다시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도 돌아왔다.
2025년에는 30경기에 선발 등판해 172⅔이닝, 평균자책점 2.97, WHIP 0.92, 185탈삼진을 기록했다. 30경기 선발은 2019년 이후 처음이었다. 예전처럼 매 경기 100마일을 던지며 타자를 파괴하지 않아도 한 시즌을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2,000K는 그 연장선에 있다. 디그롬이 마침내 누적의 영역에서도 기록 하나를 확보했다.
더 이상 2021년의 디그롬은 아니다. 그때는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사실상 99마일에 가까웠고 타자는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오는 공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2026년 디그롬은 조금 다른 투수다.
최근 Statcast 데이터에서 포심 평균 구속은 약 97.2마일, 슬라이더는 약 91.1마일이다. 38세 선발투수에게 붙이기에는 여전히 이상한 숫자다. 더 흥미로운 것은 변화구다. 2026년 슬라이더의 헛스윙률은 약 40%, 체인지업은 40%를 넘는다.
예전에는 100마일에 가까운 패스트볼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조합하며 타자를 처리한다. 즉 디그롬은 단순히 구속을 유지하며 늙어가는 투수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압도적인 구위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배분하며 살아남고 있다.
상징적으로 2,000번째 삼진도 슬라이더였다. 오티스에게 1-2에서 던진 공은 존 아래로 떨어졌고 타자의 배트가 따라 나왔다. 전성기의 디그롬을 설명할 때 사람들은 늘 패스트볼을 먼저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를 완성한 2,000번째 삼진은 변화구였다. 38세의 디그롬이 어떻게 아직도 타자를 잡아내는지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인다.
여기서 과거의 영광만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올해 디그롬은 2018~2021년의 디그롬이 아니다. 이번 경기 전까지 시즌 평균자책점은 3점대 후반이었다. 8월 14일 에인절스전에서는 오른쪽 삼두근 피로 때문에 불과 2이닝 만에 내려갔다. 2,000K까지 다섯 개만 남겨두고 시작한 경기였지만 세 개를 잡은 뒤 마운드를 떠났다.
그리고 불과 일주일 뒤 다시 등판했다. 6이닝, 1안타, 10삼진, 무실점. 시즌 평균자책점은 3.77까지 내려왔다. 어쩌면 이 두 경기의 대비 자체가 디그롬의 커리어다. 한 경기에서는 몸 때문에 갑자기 사라진다. 다음 경기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치기 어려운 투수처럼 돌아온다.
그렇다면 디그롬의 역사적 위치는 어디일까. 이 질문에는 두 개의 답이 존재한다. 누적을 중시하면 디그롬보다 위대한 투수는 많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 더 많은 경기에 나온 투수, 더 많은 삼진을 잡은 투수, 더 많은 WAR를 쌓은 투수, 더 많은 포스트시즌 경기를 책임진 투수. 그것 역시 야구의 가치다.
하지만 한 번의 선발 등판에서 만들어낸 가치의 밀도를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00K까지 1,661이닝. 커리어 K/9 약 10.8. 두 번의 사이영상. 평균자책점 1.70의 2018년. 그리고 2021년의 45.1% 탈삼진율과 3.4% 볼넷율. 그 영역에서 디그롬과 비교할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다.
결국 디그롬의 2,000번째 삼진은 꽤 오래된 야구 논쟁을 다시 꺼낸다. 위대한 선수란 무엇인가. 15년 동안 매우 잘한 선수인가. 아니면 5~7년 동안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수준에서 경기한 선수인가.
WAR는 전자를 좋아한다. 누적 기록도 전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기를 기억하는 방식은 종종 후자에 가깝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1999~2000년을 기억하고, 랜디 존슨의 애리조나 시절을 기억하고, 샌디 쿠팩스의 마지막 몇 시즌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느 날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디그롬의 경기를 본 사람들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다. 오늘은 상대팀이 몇 점을 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상대팀이 과연 한 점이라도 낼 수 있을까. 그런 투수였다.
2,000탈삼진은 누적 기록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누적이 가장 부족했던 투수가 이 기록을 달성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하지만 숫자를 조금만 뒤집어보면 이 기록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2,000K, 272경기, 1,661이닝.
2,000은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272는 얼마나 자주 마운드에 올랐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1,661은 그가 마운드에 있었던 순간 얼마나 많은 타자를 지워버렸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디그롬의 2,000번째 삼진에서 가장 기억해야 할 숫자는 2,000이 아니다. 1,661이다. 선수의 위대함을 반드시 커리어의 길이로만 측정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 기록을 쌓아 역사가 되고, 누군가는 훨씬 짧은 시간 동안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압축해 놓는다.
제이콥 디그롬의 커리어는 후자다. 그는 가장 오래 빛난 투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의 빛의 밀도만큼은 야구 역사에서 가장 강한 투수 중 하나였다.